||0||0<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종말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바로 구원의 때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테살로니카 신자들은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날이 올까 두려워하면서 걱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말이 오지 않아 믿음이 흔들렸다는 표현이 더 옳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피지도 못하고 시든 꽃처럼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완전히 꽃피게 되리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희망 속에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누리도록 정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종말은 우리가 기다리는 구원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때이므로 그 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신약 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이라는 간청으로 끝납니다. 종말을 기다린다는 것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도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경이롭게도 우리의 성경은 그 기다림으로 끝납니다.
그 시간과 그 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날은 밤도둑처럼, 진통처럼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미 “마지막 때”(1요한 2,18)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이때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마지막 순간이 앞으로 수십 년 뒤에 닥쳐올지, 아니면 수만 년 뒤에 닥쳐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종말의 때, 마지막 때라는 특성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특히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개인적인 죽음을 생각하며 우리의 삶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점을 숙고하더라도, 우리는 마지막 때, 종말의 때를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종말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바로 구원의 때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테살로니카 신자들은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날이 올까 두려워하면서 걱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말이 오지 않아 믿음이 흔들렸다는 표현이 더 옳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피지도 못하고 시든 꽃처럼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완전히 꽃피게 되리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희망 속에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누리도록 정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종말은 우리가 기다리는 구원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때이므로 그 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신약 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이라는 간청으로 끝납니다. 종말을 기다린다는 것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도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경이롭게도 우리의 성경은 그 기다림으로 끝납니다.
그 시간과 그 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날은 밤도둑처럼, 진통처럼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미 “마지막 때”(1요한 2,18)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이때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마지막 순간이 앞으로 수십 년 뒤에 닥쳐올지, 아니면 수만 년 뒤에 닥쳐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종말의 때, 마지막 때라는 특성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특히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개인적인 죽음을 생각하며 우리의 삶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점을 숙고하더라도, 우리는 마지막 때, 종말의 때를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