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멍에는 유다교에서 가르침, 특히 하느님의 계명에 담겨 있는 가르침을 나타내는 표상입니다. 소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역할을 멍에가 하기 때문이지요. 현대적인 의미에서 말씀드린다면, 운전할 때의 차선이나 전철이 주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레일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고생스럽게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그 예가 나옵니다. 안식일에는 추수를 하면 안 되는데, 밀밭을 지나가다 밀 이삭을 뜯어 먹는 행위가 추수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추수를 금하는 계명의 의미나 목적과는 거리가 먼 주장이지요. 이런 규정들이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들이 이천 년 전 유다인들에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금요일에 단식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목요일에 남은 음식을 모조리 버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집 안에 어떠한 음식도 없었기 때문에 단식이라는 규정은 잘 지킬 수 있었는지 몰라도, 단식의 의미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멍에, 곧 예수님의 가르침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우리를 훈계합니다. 자동차가 차선을 벗어나거나 전철이 레일을 벗어나면 결코 제대로 달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잘 맞는 편한 멍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일러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도 기쁘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멍에는 유다교에서 가르침, 특히 하느님의 계명에 담겨 있는 가르침을 나타내는 표상입니다. 소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역할을 멍에가 하기 때문이지요. 현대적인 의미에서 말씀드린다면, 운전할 때의 차선이나 전철이 주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레일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고생스럽게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그 예가 나옵니다. 안식일에는 추수를 하면 안 되는데, 밀밭을 지나가다 밀 이삭을 뜯어 먹는 행위가 추수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추수를 금하는 계명의 의미나 목적과는 거리가 먼 주장이지요. 이런 규정들이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들이 이천 년 전 유다인들에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금요일에 단식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목요일에 남은 음식을 모조리 버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집 안에 어떠한 음식도 없었기 때문에 단식이라는 규정은 잘 지킬 수 있었는지 몰라도, 단식의 의미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멍에, 곧 예수님의 가르침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우리를 훈계합니다. 자동차가 차선을 벗어나거나 전철이 레일을 벗어나면 결코 제대로 달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잘 맞는 편한 멍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일러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도 기쁘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