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복음: 요한 17,20-26
< 용기는 믿음에서 >
우디 앨런은 코미디 방송 작가로도 명성을 누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명성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그는 무대 뒤에 숨어 있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관객들 앞에 나서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탠딩 코미디언의 주급 75달러는 원고료로 들어오는 1,700달러에 비하면 푼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앨런은 일의 영역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섰습니다. 공연이 시작될 때쯤이면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긴장되었습니다. 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야유와 조롱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농구 선수가 큰 키를 가지고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태어난 그 재능을 사용할 용기를 갖고 있습니까?”
용기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오늘 독서에서 당시 유다 지도자들 앞에 홀로 서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고발하는 그들을 한 마디로 분열시켜 놓습니다. 그들이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고는 자신 또한 바리사이고 한 사람의 부활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고 말하며 바리사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부활과 천사와 내세가 없다고 믿는 사두가이들을 적으로 만들어 자신들끼리 싸우게 만듭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겐 감히 고개도 못 들 위엄을 지닌 이들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께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청하고 풍랑이 이는 물 위에 자신의 발을 내어 딛을 수 있었던 용기는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불안에 떠는 겁쟁이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바오로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로마의 황제 앞에서도 결코 떨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큰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큰일을 맡기시는 것 같습니다.
박보영 목사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아이가 사고를 쳐서 재판을 받고 소년원에 가게 되었는데 그 재판을 받는 중에 성령께서 마음을 움직이셨다고 합니다.
‘네가 그 아이를 책임지고 맡아 키우겠다고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소리쳐라.’
그러나 법정의 엄숙함을 뚫고 일어나 재판관에게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여간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하라고 하시니 벌떡 일어나 그 아이를 달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렇게 법정에서 끌려 나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유명한 골칫거리로 소문까지 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또한 믿는다면 용기를 내야합니다. 십일조를 낼 용기, 미움과 멸시를 받을 용기, 가난해 질 용기, 자존심이 무너져 내릴 용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사람들에게 바보로 취급될 용기를 가져야합니다. 그래야 한다고 느낄 때 바로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 믿음의 증거입니다.
-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말씀
복음: 요한 17,20-26
< 용기는 믿음에서 >
우디 앨런은 코미디 방송 작가로도 명성을 누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명성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그는 무대 뒤에 숨어 있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관객들 앞에 나서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탠딩 코미디언의 주급 75달러는 원고료로 들어오는 1,700달러에 비하면 푼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앨런은 일의 영역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섰습니다. 공연이 시작될 때쯤이면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긴장되었습니다. 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야유와 조롱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농구 선수가 큰 키를 가지고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태어난 그 재능을 사용할 용기를 갖고 있습니까?”
용기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오늘 독서에서 당시 유다 지도자들 앞에 홀로 서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고발하는 그들을 한 마디로 분열시켜 놓습니다. 그들이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고는 자신 또한 바리사이고 한 사람의 부활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고 말하며 바리사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부활과 천사와 내세가 없다고 믿는 사두가이들을 적으로 만들어 자신들끼리 싸우게 만듭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겐 감히 고개도 못 들 위엄을 지닌 이들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께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청하고 풍랑이 이는 물 위에 자신의 발을 내어 딛을 수 있었던 용기는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불안에 떠는 겁쟁이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바오로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로마의 황제 앞에서도 결코 떨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큰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큰일을 맡기시는 것 같습니다.
박보영 목사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아이가 사고를 쳐서 재판을 받고 소년원에 가게 되었는데 그 재판을 받는 중에 성령께서 마음을 움직이셨다고 합니다.
‘네가 그 아이를 책임지고 맡아 키우겠다고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소리쳐라.’
그러나 법정의 엄숙함을 뚫고 일어나 재판관에게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여간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하라고 하시니 벌떡 일어나 그 아이를 달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렇게 법정에서 끌려 나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유명한 골칫거리로 소문까지 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또한 믿는다면 용기를 내야합니다. 십일조를 낼 용기, 미움과 멸시를 받을 용기, 가난해 질 용기, 자존심이 무너져 내릴 용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사람들에게 바보로 취급될 용기를 가져야합니다. 그래야 한다고 느낄 때 바로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 믿음의 증거입니다.
-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말씀
비록 그 믿음이 나를 힘들게 할 지라도
그 믿음, 용기 그대로 이끌어 주시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