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성지 순례 (4-3): 성 종태(토마스 모어)

by 尹若瑟 요셉 posted Nov 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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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성지 순례 (4-3)



                                                                         글쓴이 : 성 종태(토마스 모어)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저서로는 ‘나가사키의 종, 원폭연구, 로사리오의 쇠사슬, 영원한 것을’ 등이 있다.
직접 원폭 피해를 입은 부인의 유해는 골반뼈 한 조각 뿐이었고 부인이 기도하던 로사리오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후 그의 명성과 업적을 기려서 레오 10세 교황님께서는 그에게 축시를 보내주셨고,
저 유명한 헬렌켈러 여사도 이곳 ⌜여기당⌟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오후 늦게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 (1894~1941) 기념관⌟을 관람하였다.
콜베 신부님은 1930년 5월에 몇 명의 수도사와 함께 나가사키에 도착한 후
⌜오우라 천주당⌟ 아래의 목조 서양관에서 수도원을 열어 인쇄사업을 시작,
수많은 천주교 서적을 발행하여 포교활동을 하였다.

1931년에는 일본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일본어 판을 발간하였다.
그후 신부님은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서 활동하시면서 ⌜성모의 기사회⌟ 회지를 통해서
나치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되었고,
아사감방에 들어가게 될 처지에 놓인 프란치스코 가조니체란 사람을 대신하여
자진 그곳에 들어가 순교한 성인이시다.

4. 운젠(雲仙)
  나가사키에서 운젠까지는 버스로 1시간 20분 정도의 거리였다.
오전 일찍이 야산 속에 있는 ⌜운젠 국립 공원 지옥 계곡⌟을 올라갔다.
교토(京都) 등지에서 숨어 있는 가톨릭 신자들을 색출 검거하여,
두 손은 뒤로 묶고 목에는 무거운 돌을 매단 채 몇 달에 걸쳐서 이곳 나가사키까지 도보로 끌고 왔다.
배교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펄펄 끓는 온천 유황물 속에 담갔다 뺐다 하여
온 몸의 살갗이 흐물흐물 녹아 내리는 극도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견뎌내신 당시의 순교자들의 모습이 유황 수증기와 함께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환경성’이란 곳에서 세운, 이 숭고한 순교자들의 기념 표지판에
영문으로 “damned"(저주받은)라고 써 놓은 것은 참으로 얼토당토 않는 것이었다.
하루 속히 나가사키 교구에서 수정 게시하기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고귀한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며 합동 묵념을 바쳤다.

  성지 순례 중 두 번째 미사를 봉헌하게 된 ⌜운젠 성당⌟은 언덕 위에 있어서
계단을 한참 올라 가야 했는데 부슬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보살피는 수녀님과 봉사자들의 손길이 몹시 정겨웠다.
이 훌륭한 성당의 신자 수는 총 일곱 명인데 그것도 나이 많은 관리인 부부를 포함해서다.
일본에서 선교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였다.

  ⌜운젠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다자이후로 이동하였는데, 시간은 2시간 30분쯤 걸렸다.
이번 성지순례 후 처음으로 성지가 아닌 관광 명소 ⌜다자이후 천만궁⌟을 둘러 보았다.
이곳은 미치자네라는 문인을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신사(神社)이다.
학업 성취, 상급 학교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방문하여 기도하는 곳이다.
신사 뜰 여기 저기에 거대한 녹나무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수령이 1500년이나 되는 것도 있었다.
사실 일본은 잡신(雜神)의 나라로서 일본인이 모시는 신이 삼천이 넘는다고 한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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