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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1 09:49

부활 제6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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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복음: 요한 15,9-17
  

< 아름다운 구속 >

제가 본당에 있을 때 한 비신자 부모님이 고등학생인 아들 둘을 데리고 상담을 하자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이 워낙 속을 썩여서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자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고 2짜리 형이었는데, 그 아이는 학교에 안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말로는 학교 간다고 하고는 밖에서 놀다 들어오고 또 직접 학교까지 데려다 주어도 2교시를 못 버티고 나와 버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공부를 안 해도 좋으니 학교 마치는 시간까지만 붙어있어 달라고 애원해도 머리는 끄덕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학교 안 가고 PC방에서 놀다가 주인의 돈까지 훔치려 하여서 부모님이 불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부모님을 화나게 하는 것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아무리 물어보아도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랬다는 것입니다. 보고 있던 저도 답답했습니다.

그럴 바에야 자퇴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하면 또 자퇴는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 아이가 사귀는 여자 친구도 자퇴한 아이인데 그 아이에게 자퇴만은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어떤 누구의 말은 안 들어도 여자 친구의 말은 듣고 따르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모든지 할 수 있어.’라고 하는 노래가사처럼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 친구의 말은 철저하게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안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도 알게 됩니다. 내가 의사인지 알면 의사의 일을 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기가 어머니와 떨어질 때 불안해 우는 이유는 어머니가 사라지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기는 어머니 앞에서 자신이 자녀임을 알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젖을 빨 수 있고 웃어줄 수 있고 말썽도 부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구속되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불안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해서는 안 되는 일들까지 하게 됩니다.

위의 친구들은 부모님이 있어도 또 학생으로 있어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자신들도 답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춘기란 더 이상 사람의 애정으로는 자신이 충족될 수 없음을 아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젠 부모님의 애정이 자신의 삶의 의미가 되지 못합니다. 마치 아이 때는 우리가 조국의 무한한 영광을 위해 태어났다고 하면 믿을 수 있어도 어른이 되어서는 일본의 가미가제 자살 특공대처럼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진정 의미 있는 일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다행한 일인지는 몰라도 그 아이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 줄 대상이 있습니다. 적어도 그 여자아이의 애인으로서 무언가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인으로 머물기 위해서는 그 여자의 말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래야 지금 죽더라도 적어도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 받던 ‘무언가’로 죽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엔가 어떤 의미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잘 나타낸 시가 김춘수의 ‘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누군가가 없다면 꽃은 그저 의미 없는 식물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어진다면, 누군가의 관심을 받게 된다면 그 꽃은 비로소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자캐오가 바로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참으로 자신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안으로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마치 자신이 꽃인지 모르는 식물에게 “너는 꽃이야!”라고 말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너는 마리아야!”라고 해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하던 아담의 직무였습니다. 아담의 역할은 존재하는 것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 존재이유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이름을 불러주시며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려주십니다. 그분을 만나야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됩니다. 자캐오는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즉,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당연히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명령하시는 것을 구속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이 아름다운 구속이 참 자유입니다. 세상의 명예와 쾌락과 돈과 힘의 논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캐오도 돈의 노예로 살았지만 이제 돈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무엇’으로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Nothing)은 자신을 무엇으로 만들기 위해 세상 것에 집착하지만, 이제 무엇(Something)이 되어버렸다면 더 이상 세상 것으로 자신을 들어 높일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면 아직도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의 친구가 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합니다. 그렇다면 자유롭게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 자유이고 해방이고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어쩌시겠습니까? 그분께 구속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말씀
  • ?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5.11 10:32
    Nothing 에서 Something 으로 가는 삶의 과정중에
    예수님이 깊게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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