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015.03.19 09:23

요셉 대축일

조회 수 1034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0||0#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복음: 마태오 1,16.18-21.24ㄱ


< 마음이 온유한 자 땅을 차지한다 >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영화 제목 중에 ‘정의의 심판자’나 ‘응징자’ 등이 등장합니다. 죄를 짓고도 법으로는 싹싹 빠져나가는 나쁜 인간들을 총을 들고 직접 나서서 참 정의를 세운다는 내용들입니다.

사실 정의로움은 죄를 지으면 합당한 벌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의 요셉은 절대 법을 따르는 사람도 아니었고 의로운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법대로 했다면 약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임신하였기에 그 배신한 여자를 돌로 쳐 죽여야 정의로운 것입니다. 약혼까지 해 놓고 자신을 버젓이 배신한 여자를 감싸주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일까요?

성경에서 정의롭다는 말은 구원과 연관됩니다. “의롭게 되어 돌아갔다”라고 말한다면 “구원받았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바리사이와 세리가 성전에 나왔는데 의롭게 되어 돌아간 것은 세리라고 합니다. 바리사이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정의롭지 않았고, 세리는 죄만 지었지만 정의롭게 되어 돌아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로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단어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움을 정확히 알아야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민수기 15장에 미르얌과 아론이 모세에게 대항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결혼도 했던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인과 또 결혼하였기 때문입니다. 에티오피아 여인이라면 아마도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함께 데리고 나온 흑인 노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흑인인 노예와 결혼하는 것은 당연히 스캔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임금이 백정 딸과 결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라 욕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심판은 다릅니다. 하느님은 모세를 비판한 미르얌과 아론을 꾸짖으시고 미르얌에게는 악성 피부병이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주님께 “하느님, 제발 미르얌을 고쳐 주십시오.”하며 간청합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모세의 청을 들어주시어 이레 동안 진영 밖에 격리하게 하신 다음 그를 다시 고쳐주셨습니다. 정의롭다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한데 모세는 그녀를 위해 용서를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졌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의로움이라 생각한다면 모세가 아니라 미르얌이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미르얌의 질책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모세가 아닌 질책하는 미르얌을 심판하십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

여기에서 ‘겸손(프라우스)’이라는 단어는 “마음이 ‘온유한’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나오는 ‘온유’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 말이 이 사건 중간에 나오는 이유는 ‘겸손이나 온유함’을 지닌 사람이 참으로 ‘의로운’ 사람임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닌 온유한 사람이 진정 정의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 와서 배워라.”라고 하실 때, 당신은 또한 의로우신 분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과연 겸손하고 온유하셨던가요? 이스라엘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되는 ‘독사의 자식들’이란 욕을 하시고, 가장 거룩한 자세로 있어야 하는 성전에서 폭력을 쓰시며 모든 것을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화가 나셔서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온유함은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화를 내지 않는 성격과 같은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모세 또한 사실 그렇게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온유했다면 자신의 동족을 죽이는 이집트 사람을 살해했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십계명판을 들고 내려오다가 금송아지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노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판을 내던져 깨버렸습니다. 오죽하면 모세를 그릴 때 뿔이 난 사람으로 그리겠습니까?

참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겸손)나 정의로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덕은 마치 ‘멍에를 맨 소처럼’ 그 주인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며 따르는 덕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자와 혼인을 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혼인하였다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아버지의 뜻만을 따라 아버지를 드러내신 것처럼, 온유란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그 자리를 알아 그분 멍에를 매고 그분이 부리는 대로 움직이는 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님의 종이라 하시며 그대로 이루어지라고 청한 성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르얌이 모세를 판단할 때는 모세가 그렇게 하느님의 뜻에 의해 행동하는 것을 믿지 않고 자기식대로 하느님의 위치에 서서 모세를 심판한 것입니다. 자기가 하느님이 되어 모세를 심판했으니 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누구라도 온유하지 못하고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소가 소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 판단은 오로지 주인에게 유보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셉이 마리아를 판단했다면 의롭지 못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 의롭지 못함 때문에 구원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돌에 맞았다면 어찌 될 것이며 또 어떻게 아기를 혼자 낳고 또 어떻게 이집트로 피신하여 살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은 자신이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처지임을 잘 알았습니다. 이런 온유한 사람을 마리아와 혼인시키신 것입니다. 정의롭게 판단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신과 약혼한 여자가 임신하여서 돌아왔어도 그 여인을 판단할 수 있는 처지가 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의로움입니다.

  

예수님은 가리옷 유다를 함께 데리고 다니면서도 다른 사도들이 그가 배신할 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그를 끝까지 감싸주셨습니다. 당신께서도 심판을 유보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심판하시기보다는 구원하시러 오신 분임을 잘 아셨습니다. 당신의 위치가 바로 하늘이 아닌 땅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땅처럼 당신을 낮추시니 당신의 신부인 교회의 참 신랑인 새 하늘이 되신 것입니다. 새 땅의 주인인 새 하늘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늘이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심판자가 아닌 땅과 같아서 심판을 유보하고 조용히 마리아를 보내주기로 마음먹었기에 땅인 마리아를 참 신부로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온유한 이가 땅을 차지하는 방법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땅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땅은 영영 그분의 소유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 처지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죽은 땅이었음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의롭고 온유한 요셉처럼 낮은 마음으로 모든 판단을 하느님께 돌려드립시다. 그러다보면 하느님의 섭리가 나를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모세는 온유하기에 성가정의 가장으로 뽑혔던 사람입니다. 요셉을 본받는다는 것은 그의 온유하고 겸손하여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처지라는 의로움을 본받는 것입니다. 땅은 나의 신부입니다. 땅인 나의 신부를 차지하는 방법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처지를 잊지 않고 오직 주님의 멍에만 매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말씀
  • ?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3.19 09:48
    섣부른 판단이 부른 참극을 얼마전 겪었더니...비록 사람은 아니었지만.
    무릇 판단에 앞서 좀 더 생각하고 겸손해지는 법을 조금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독단적인 생각에 치우치지 말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자세가 꼭 필요함을.
    특히 사람에 대한 판단은 더더욱. 심판자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임을...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7 인간은 하느님을 알 수 있다. (재교육용 자료 1) file 尹若瑟 요셉 2016.06.03 2036
606 10월 14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인화야~(효주아네스) 2013.10.14 1090
605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2.21 1059
604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3.25 1048
» 요셉 대축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3.19 1034
602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4.10.21 1013
601 1월 15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인화야~(효주아네스) 2014.01.15 1010
600 연중 제6주간 화요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2.17 999
599 부활 제6주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5.11 994
598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 (2/2): 재교육용 자료 (18) 尹若瑟 요셉 2016.10.15 993
597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4.10.16 987
596 주님 봉헌 축일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2.02 984
595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2.16 980
594 연중 제9주간 목요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6.04 977
593 주님 공현 후 금요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1.09 969
592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6.29 967
591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7.09 965
590 부활 제4주간 수요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4.29 963
589 8월 22일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3.08.22 963
588 부활 제5주간 수요일 1 인화야~(효주아네스) 2015.05.06 96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
미사 시간 안내
평일
오전 06:30
화,목
오후 07:30
수,금
오전 10:00
주일
오후 03:30(초등)
오후 07:00(중고등)
오전 06:30
오전 10:30
 

교리 시간 안내
오후 08:00 저녁반
오전 10:30 오전반
오후 02:00 초등부
오후 08:00 중고등

52714 진주시 천수로 152번길 24 망경동성당
전화 : 055-756-5680 , 팩 스 : 055-756-5683

Copyright (C) 2020 Diocese of Masan. All rights reserved.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