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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6 08:50

사순 제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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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복음: 마태오 7,7-12


< 죽음을 두려워하면 삶도 두려워한다 >

프랑스의 어느 백만장자 구두쇠가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큰 부자였던지 자기 재물에 연연하여 날마다 그 재물에 기뻐하였습니다. 자기재물을 완전하게 보관하기 위하여 자기 집의 포도주 저장실을 깊이 파고 그 저장실에 다시 깊은 굴을 파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거기에다가 황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 부자가 행방불명이 되자 사람들은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살던 집은 다른 사람의 손에 매각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을 매입한 사람이 지하실을 발견하고 들어가 보니 그 속에서 먼저 살던 주인이 황금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죽어 있었습니다. 그가 그곳에 들어갈 때는 그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는 사실을 깜박 잊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부자들은 죽기를 두려워합니다. 돈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돈에 집착하는 것이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삶이 행복해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 세상에서 권력과 부와 명예를 지녔던 이들은 대부분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예를 들면 한나라의 무제는 장생불사를 위하여 승로반에 찬 이슬을 받아 마셨다고 하고, 진나라의 시 황제는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동방 삼신산에 동남동녀 500명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죽지 않으려고 경호원을 동원하고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찾아 먹습니다. 이런 이들은 대부분 삶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세상에서 성공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제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삶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을 삶과 반대말로 여깁니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일부이지 삶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죽음이 삶의 맨 끝자락에 있기는 하지만 삶의 일부가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산 사람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삶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에스테르 왕비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함하여 모두 죽이려는 함만의 계략에 정면대응하기로 합니다. 임금 앞에 당당히 나서 억울함을 토로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이 부르지 않았는데도 임금 앞에 나서면 왕비라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때 왕비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이 죽음의 시간을 통하여 하느님의 권능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기회로 삼으라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의탁하는 왕비에게서는 전혀 두려움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이 끝장나게 하소서.”

어쩌면 왕은 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에스테르에게 반했는지도 모릅니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민족을 구하려는 왕비의 청을 들어주고 함만을 처형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을 거둡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내어놓으니 많은 이들의 생명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삶 안에서도 많은 두려움이 생겨납니다. 내가 죽음을 재난처럼 여긴다면 지금 삶도 재난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에스테르 왕비처럼 삶도 두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행복이 아닐까요?

에스테르 왕비가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자신은 평생 두려움에서 살고 나머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죽는 것이 두렵다면 우리의 믿음을 재점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드시 믿음을 방해하는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끊어내고 오로지 주님 섭리에 맡기십시오.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참으로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죽음과 삶은 하나입니다.


                                                                                                                           -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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