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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찬미예수님

사순절을 잘 보내고 계십니까?

보내는 것과 지내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겁니다.

보내는 것은 그냥 초침 넘어가듯이 의식 없이 사는 게 보내는 거고

지내는 것은 사순절의 그 정신대로 사는 것이 지내는 걸 겁니다.



지금부터 30여년 전, 우리 한국에 좌변기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그래도 그때 사제관에는 좌변기가 있었어요...서양신부님들이 그걸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에...서양신부님이 가신 다음에 한국 신부님이 부임을 했습니다. 신부님들이 먹고 살려면 그래도 누가 옆에 있어야 되요?

식복사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수소문을 해서 저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던 시골처녀를 물색을 해서 사제관 식복사로 불러들였습니다. 그 식복사가 사제관에 오던 첫날 하필 그 동네 신부님들 지구모임이 있었어요.식복사가 오자마자 밥을 해대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요.

신부님들이 “아, 시골 아가씨가  반찬도 아주 시골스럽게 잘 한다!‘

그러나 음식이 좀 짰던가 봐요.

신부님들이 물 좀 달라고 하니까 이 아가씨가 열심히 냉수를 갖다 날랐어요.

신부님들이 “이 집 냉수가 왜 이리 맛있어? 아주 시원하네.....냉수 좀...”

그런데 이 식복사가 냉수를 뜨러가서 도대체 오질 않아~~

그래서 본당신부님이 ‘얘가 도대체 어딜 갔나?’

부엌에도 없고.....보니까 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서 있는 거야.

“너는 왜 물 뜨러 가더니 여기 서 있냐!”

“신부님, 큰일 났어요..... 어떤 신부님이 우리 샘 위에 앉아 계셔요.”

우리 할머니는 지금 무슨 말인지 몰라^^

그날 점심때 신부님들은 화장실 물만 계속해서 퍼다 먹은 거예요.

시골에서 올라온 이 아가씨가 생전 좌변기를 본 적이 있습니까?

시골 자기네 집 마당에 우물이 있잖아요.

‘야, 도시는 이렇게 집안에까지 샘을 놓고 사는구나!’

연신 그거 퍼다가  밥도 하고....그거 퍼다가 신부님들 물도 먹였어요^^



제가 얘기하는 그 아가씨는 화장실 앞에서 신부님을 만났지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 사마리아 여인은 야곱의 우물 앞에서 예수님을 만나십니다.



한평생을 상처와 멸시와 恨 속에 살고 있던 사마리아 여인!

오늘 복음의 표현을 빌리면 남편이 다섯이었고, 지금 같이 사는 남자도 역시 결혼만 안했지...

동거하고 있는.... 남자 여섯과 살았던 그 여자의 삶이 평탄한 삶이었겠습니까?

얼마나 멸시를 받았겠느냐!

대부분의 사마리아 여인들은 아침에 밥 푸기 전에 물을 길으러 나오지만

이 사마리아 여인은 동네사람이 손가락질 하는 것 때문에 아침에 나오지 못하고

한낮에 몰래 사람이 없을 때 물을 길으러 나왔다가 누구를 만난 겁니까?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그 한 많은 여인이 우물가에 육신의 물을 길으러 왔다가

영혼의 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서....예수님에 취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하는 아름다운 긴 이야기가 오늘 나왔습니다.



우물이라고 하는 것은 땅에서 나오는 물을 모아 두는 장소입니다.

이 우물에서 예수님과 죄 많은 여인이 만났습니다.

이 세상의 물은....또 물이 나오는 장소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담는 상징성이 있고.....

영혼의 물 못지않게 우리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물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이 야곱의 우물처럼....이 야곱의 우물물은 뭡니까?

구약시대에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14년 동안 그 여인을 얻으려고 기다렸던....

사랑 중에 최고의 사랑이었던... 라헬을 만나려고 했던 장소가 바로 야곱의 우물가였습니다

바로 그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인간의 사랑 못지않은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영원한 배우자를 만난 겁니다.

물에는 영원으로 이끌어지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오늘 전 세계의 성당에서 사제들의 입에서 나오는 강론의 주제는 물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인간은 물이다!

그 얘기는 뭐냐!

사람이 수태될 때 수정란 상태에서는 99%가 물입니다.

태어날 때 인간의 몸은 90%가 물입니다.

성인으로 살아갈 때는 우리 몸의 7~80%가 물입니다.

사람이  뼈와 가죽만 남아 죽을때는 55% 정도가 물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에서 50%의 물이 빠져 나가면 그대로 죽습니다.



에모토 마사루라고... 한평생 물을 연구한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라는 책을 보면 물은 사람의 감정을 읽습니다.

물은 글을 읽고 그 내용에 따라 반응을 달리합니다.

유리컵에 ‘너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하루 종일 써놓은 다음에

그 담겨 있던 물을 현미경으로 보면 그 결정체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똑같은 물을 유리컵에 담아놓고 그 앞에 종이에다가  

'나쁜놈!'  '죽어라!'

이렇게 하루 동안 써 놓고 보면 그 물의 결정체가 다 깨지고 찌그러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물이라고 하는 것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을 먹을 때 마다

‘참 고맙다..다...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리 뱃속으로 들어가는 물은 산삼에 비할 정도가 아니고.....인삼 녹용에 비할 정도가 아닌 엄청나게 보약으로 변해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분의 주장이었습니다. 그 책은 베스트 셀러로 많은 사람들이 읽고 매스컴에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물이라고 해서 다 좋은 물은 아닐 겁니다.

나쁜 물도 있고 좋은 물도 있고. 있습니다.

영적인 물도 있고 세속적인 물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물을 오늘 우리는 영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묵상의 화두로 여러분에게 던지고자 합니다.

물이라고 하는 것은 부드럽고, 정화의 기능이 있고, 밑으로 향하는 하향성이 있고,

또 어떤 상태로든지 뛰어난 적응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에게서 겸손을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끈기를 배우고, 자기극복을 배우고

집중력을 배우게 됩니다.



영적인 물은 많은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로 낙수를 들고 싶습니다.

落水라고 하는 것은 처마 끝에서 똑똑......떨어지는 바로 그 물입니다.

아무 힘도 없어 보이고 바람만 불면 휙휙 날아갑니다.

그 낙수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떨어지면 그 밑에 바위나 돌멩이, 시멘트가 있다하더라도

파여지고야마는 흔적을 남깁니다.



우리 신자들의 삶의 기초는 이 낙수와 같이 살아야 됩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요령이 필요 없습니다.

십계명 가르침대로 우직하게 살면 됩니다.

기도 생활 아침, 저녁 신공 바쳐야 됩니다.

교회의 가르침대로 그대로 살면 됩니다.

신앙은 인내심을 가지고, 희생과  기도를 할 때 내 영혼에 하느님의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하느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낙수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낙수는 바위를 뚫습니다.

식사 때 바치는 기도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아침에 일어나 1~2분 하는 아침기도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에 바치는 묵주기도 5단이 그게 내 신앙생활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다릅니다.

기도의 낙숫물이 우리의 어두운 영혼을 뚫어서 심장을 쪼개고, 뼈를 쪼개고, 세속적인 욕심을 불태워버리는....

엄청난 능력이 있는 그 물이 바로 낙수입니다.



영적인 물, 두 번째 流水가 있습니다.

흘러가는 물입니다.

낙수에 의해서 생겨난 흐름입니다.

물은 모이면 흘러갑니다.

흐르는 물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수신(修身)의 교훈입니다.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이 돌을 다듬듯이... 우리들은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영혼을 다듬어야 됩니다.

흐르는 물처럼 계속해서 자신을 갈고 닦을 때 우리는 하느님 손 안에 놓여진 작은 조약돌이 됩니다.

거칠고 뾰족한 돌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발을 찢게 하지만

부드럽고 동그란 돌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누군가의 손에 쥐여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그 돌이 처음부터 동그랗겠느냐!

처음부터 그렇게 맨들맨들했겠느냐!

아니죠?

태초에 그 돌은 무지하게 험악한 돌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수 십만년... 수 천년 동안 흐르는 물에... 유수에 씻기다 보니까

그런 아름다운 돌이 된 겁니다.

우리들은 하느님의 시냇물 안에서 성령의 유수 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세 번째로 영적인 물은 潭水가 있습니다.

담수

작은 물줄기들이 어느 한 곳에서 무리를 형성합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그 담수가 내 가정일 수도 있고

내가 속한 본당의 어느 단체일 수가 있습니다.

이 담수 안에는 두 가지의 역기능이 있습니다.

첫 번 째로 물위에 떠있는 것을 들어 올리는 부력이 있고, 물 위의 것을 끌어 내리는

침수의 기능이 있습니다.



부력은 뭡니까?

상대방을 띄워 주는 힘입니다.

내 가정 안에서 내가 몸담고 있는 레지오 단체 안에서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직장 동료들 안에서

나는 과연 상대편을 부력의 힘으로 늘 띄워주고 살아가는가!

칭찬과 위로와 격려와...인정하는 것이 바로 부력의 힘이요.

침수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저 인간을 비평하고 험담하고....

물속으로 끌어내려서 내발 밑에 깔아뭉개는 것이 침수입니다.



여기 저기 작은 시내들이 모여서 작은 물을 만드는 것이 담수라고 한다면...

그 안에 모여가지고 과연 나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이 교회 안에서 부력의

역할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른 사람을 물속으로 끌어내리는 침수의 역할을 하고 사는가를

묵상해야 될 겁니다.



담수보다 큰 것이 뭡니까?

湖水입니다.

잔잔한 호수 앞에 서 있으면 첫 번째 느끼는 우리들의 감정은 평화입니다.

담수보다 큰 공동체, 본당이나 공동체 같은 곳이 호수입니다.

본당 안에 있어야 되는 기본적인 향기가 바로 평화의 향기입니다.

평화, 기쁨이 없는 성당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싸우고... 목자와 양들은 서로 헤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고.....

서로 피를 흘리면서 싸웁니다.

평화가 없다는 것은 뿌리가 약하다는 뜻일 겁니다.

출발도 모르고 목적지도 모르는 그런 공동체, 그런 본당이 너무 많습니다.

서로가 대접만 받으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은 바보가 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늘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예수님은 큰 바보라고 그랬습니다.

아무리 신학박사라고 해도 주님의 삶이 큰 바보였다고 하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 공동체 안에 평화가 유지되려면 바보가 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첫 번째 단추는 바보가 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큰 바보였듯이 우리는 작은 바보가 될 것을.....

성체를 영할 때마다 이를 악물고 다짐해야 됩니다.



다섯 번째의 영적인 물은 用水가 있습니다.

담수와 호수는 반드시 유용하게 쓰여져야 됩니다.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대로 우리 자신을 내어맡기고 그 분의 손에서 작은 도구가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예루살렘에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나귀라고 하는 놈은 고집불통, 지 멋대로 하는 짐승이 바로 나귀의 상징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이 나귀보다 훨씬 고집이 쎕니다.

늘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보다는 예수님을 내가 맘대로 하려 합니다.

루가 복음 19장 31절에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합니다.>

나귀를 달라고 할 때 제자들이 한 말입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합니다.

우리를 용수로 쓰시겠다고 합니다.

베드로를 쓰시겠다고 합니다.

글라라를 쓰시겠다고 합니다.

마리아를 쓰시겠다고 합니다.

회장님을 쓰시겠다고 합니다.

본당신부님을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여러분들에게 했을 때 여러분은 뭐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예, 주님, 저를 쓰십시오...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쓰시겠다고 그럽니다.

이번 한 주일 동안 나를 통해서 뭔가를 하시겠다고 그럽니다.

담수나 호수나 용수가 되지 않을 때는....  

쓸모없는 물이 될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썩은 물은 그냥 썩기 마련입니다.



여섯 번째 영적인 물은 淨水가 있습니다.

당신의 협력자로 쓰기 위해서 우리가 정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정화되기 위해서는 피정이라든지, 고해성사라든지, 성서 읽기라든지..

맑은 물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기를 쓰고 애를 써야 합니다.

머뭇거림이 없이 정화의 순간이 올 때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집집마다 정수기가 있습니다.

왜 정수기를 둡니까?

맑은 물을 먹기 위해서입니다.

지 뱃속에 들어가는 물은 정수기를 통해 먹으려 애를 쓰지만....

내 영혼이 더러워질 때는 정화시키기를 두려워하고 한 발 내딛기를 두려워합니다.

우리에게서 정수가 흘러나와야 합니다.



일곱 번째 영적인 물은 藥水가 있습니다.

약수는 분명히 제각기 효능이 다릅니다.

어느 동네 약수는 철분이 많고, 어느 동네 약수는 유황성분이  많고...

어느 동네 약수는 알칼리성이 많고....

이것은 우리가 각기 다른 탈렌트를 받았다 이겁니다.

약수가 각기 다른 효능이 있듯이... 세례 받은 우리들도 각기 다른 고유한 탈렌트를 받았습니다.

그 탈렌트를 주신 이유는 이웃을 위한 겁니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약효를 지닌 약수임을 늘 명심해야 됩니다.



여덟 번째 영적인 물에 生水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물은 생명력을 지닙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존재는 말이 부드럽고, 행동이 부드럽고, 얼굴이 밝습니다.

언제나 부드럽고 변화에 잘 대처합니다. 어느 놈이 내 속을 뒤집어도 같이 그 사람과 맞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서 여유를 갖고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늘 다른 이에게 희망을 줍니다.

남편에게 희망을 줍니다. 자기  며느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이것이 생수입니다.

'내 시어머니가 몸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늘 기쁘게 살아갈까!'

‘저 사람을 보면 나보다 나은 것도 하나도 없는데...돈도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있고 자식도 저 사람보다 잘 되고.....

나 같으면 자살을 시도해도 몇 번을 했을텐데...어찌 저 자매는 얼굴에 늘 생기가 흘러넘칠까!’

그게 바로 생수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天水가 있습니다.

천상수를 의미합니다.

甘露水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은사 아시죠?

성령이 주시는 열매 아실 겁니다.

그 열매 속에 든 천상수를 마셔야 됩니다.

제가 아주 간단하게 아홉 가지의 영적인 물에 대해 화두를 던져드렸습니다.



그 반대로 더러운 물, 부정적인 물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하수입니다.

가정, 공장, 병원에서 나오는 쓰레기 물입니다.

이 하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분심 속에서 한 번도 기쁨의 생활을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끌려 다니는 신앙생활이오, 늘 얼굴이 어둡습니다.



두 번째로 더러운 물에는 漏水가 있습니다.

새는 물, 빠져서 흘러나가는 물입니다.

공동체에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 들어가면 공동체가 깨어집니다.

잘 되는 공동체도 그 사람만 그 자리에 끼어 있으면 상처 받는 사람이 생기고 피를 흘립니다.

교회분열을 일으키는 물, 새어나가는 누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부정적인 물은 寒水가 있습니다.

차가울 한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느 공동체에 가든지 안하무인으로 살아갑니다.

차갑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찬 바람이 쌩쌩 납니다.

잘나기는...안 된 말이지만... 더럽게 잘난 척 합니다.

잘 난 것도 없으면서... 얼마나 다른 사람을 깔보고 업신여기는지 모릅니다.

곁에만 가면 찬바람이 시베리아에서 불듯이 쌩쌩 붑니다.

이걸 한수라고 그럽니다.



네 번째 부정적인 물은 乾水가 있습니다.

주님이 쓰시고자 하면, 주춤거리고 뒤로 물러섭니다.

뭔가 열심한 것 같은데 ...하느님이 정작  ‘너를 쓰겠다’

하는 순간에는 이것저것 계산하다가....결국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네’ 소리를 못합니다.

이것이 말라 있는 물, 건수입니다.



그 다음 더러운 물, 無水가 있습니다.

없을 무자입니다.

이건 냉담에 빠진 사람......무신론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일을 지키고 미사참례는 하더라도.... 머릿속은 뇌사상태처럼 살아갑니다.

심장만 뛰고 있는 식물인간처럼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뇌사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을 무수라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부정적인 물은 雲水가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리고 난 다음 하느님에게 축복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운수만을 바라고 살아갑니다.

기도할 때도 늘 달라는 기도입니다.

맨 날 복권 파는데 앞에 가서 진을 치고 삽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무당을 찾아가고 철학관을 찾아갑니다.

성체를 영하는 인간이.......이건 운수입니다.



그 다음으로 洪水가 있습니다.

신앙인이 절제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

감정의 절제입니다.

사제가 볼 때 아주 위험스런 사람이 누구냐?

열심 할 때는 아주 별나게 열심 해요.

‘아유, 저거 또 며칠 갈까?’

평일미사 나올 때는 또 열심히 나와요.

한 번 냉담에 빠지면 몇 년 동안 말을 안 들어.....

그런 사람을 보면 아유, 이 홍수 같은 사람, 절제를 못 하는 사람



이 홍수는 한 사람 영혼의 모습이지만 해일이라는 게 있습니다.

해일은 더불어 여럿이서 일으키는 파탄을 의미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끼리끼리 모여서 파를 만듭니다.

한국 천주교의 제일 문제가 뭡니까.

어느 성당이든지 패가 많습니다. 오만 패거리가 다 있습니다.

이 패거리가 모여서 기도하는 패거리가 되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만

대부분 그런 모임은 기도로 시작되지 않기 때문에 ....

하느님을 비판하고 죄를 비판하고..신자들 사이를 이간질을 하는

지난 번 어디를 휩쓸었던 그 해일처럼... 깡그리 파탄을 일으키고 맙니다.



하루 종일 해야 될 피정의 내용을 이렇게 짧게 안내를 해 드리고 화두만

던져 드렸습니다.



물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합니다.

영적인 물을 먹고 살다가도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썩은 물이 됨을 명십하십시오!



말씀과 성체의 우물에서 구원의 생수를 퍼 올려서 오늘 나도 마시고 다른이들에게도

나누어 주는 거룩한 미사가 되도록 합시다. 아멘



                                                                                                            - 김웅열 토마스아퀴나스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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