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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찬미예수님

편안하셨습니까?

한 주일 동안.....

주중을 기해서 가정방문을 다니다 보니까 한주일이 참 빨리 지나갑니다.



물론 순례자들이 와서 순례 피정을 시킬 때도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지만 요즘도 상당히 빨리지나가고 있습니다.

힘은 들지만 교우들을 방문해서 축복을 드리고 또 같이 기도할 때 사제로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 신자들이 살면서 절대 버리지 말아야 될 것이 있고, 꼭 버리고 살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교우들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버려서는 안 될게 뭐겠습니까?

여러분들 얘기해보세요.

답이 틀려도 상관없습니다.

절대 버려서는 안 될 거.....

신앙이죠?



그리고 또 뭐 있습니까?

기도!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를 버리면 안 돼요.

기도를 버리는 건 이제 하느님의 자식이기를 포기합니다! 하는 말과 똑같습니다.



또 절대 버려서는 안 되는 거, 뭡니까?

희망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내 주변 환경이 힘이 들어도 ‘희망’ 다시 말하면

‘망덕’을 버리면 안 됩니다.

또 천국을 향하는 마음.... 이런 것들을 버리면 안 됩니다.

왜냐?
우리는 이 세상으로 끝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국을 향하는 그 마음.....

또 내 가장 가까운 가족을 버리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 외에도 영적인 가치가 많이 있습니다.

절대 버리지 말아야 될 것들......



그런데 또 입에서는 달아서 집어삼켜라 삼켜라~~ 해도

과감하게 ‘퇴’하고 뱉어버려야 할 것들....

반드시 버려야할 것들이 있지요?

첫 번째는 미움입니다.

두 번째,  집착입니다.

세 번째, 미움과 같지만 조금 색깔이 다른 분노입니다.  



미움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계속 나를 괴롭히는 것이지만 분노는 미움과는 상관없이

악습처럼 터져 나오는 거 있습니다.

그런 분노 같은 거, 그리고 내 조상 대대로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상처,악습....

이런 것들은 버려야만 됩니다.



문제는 버리지 말아야 될 것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버리고~~

버리고 살아야 행복할 것에 대해서는 무슨 신주단지 끌어안듯이~~

무슨 재산이나 되는 것처럼~~

그걸 못 버리고 사는데 우리 신자들의 비극과 슬픔이 있습니다.

이것이 거꾸로 되면 삶이 불행해집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 ~ 속으로 대답하십시오.

행복하십니까?

여기 수녀님도 여러분 와 계신데 수도생활하시면서 정말 행복합니까?

행복은 수도생활을 삼십년 했느냐? 사십년 했느냐? 와 아무상관이 없습니다.

행복은 영적인 행복은 세례 받은 지 오십년이 됐느냐? 육십년이 됐느냐? 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미사 드리는 현재 이 시간에도 뭔가 마음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원인이 뭐겠습니까?

아마 대부분 90% 이상이 아직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내가 포기하는 것만큼 찾아옵니다.

기적은 언제 일어나느냐?

내가 애착하고 있는 그것에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주님께서 소위 신앙의 권리장전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복팔단에 대한 얘기를 하십니다.

물론 이 진복팔단에 대하여 오늘 이 짧은 시간에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하나가 보물과 같아서 깊이 묵상해야할 내용입니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뒤죽박죽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진복팔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첫 자리에 나오는 것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

책을 쓰더라도 맨 앞의 첫머리의 제목을 읽어 보면 그 책의 전체를 알 수 있듯이....

진복팔단에서 가난이라고 하는 거....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

이 가난이라고 하는 거가 뭐겠습니까?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 그게 바로 가난한 자일 겁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돈이 없이 가난하게 사는 자가 행복하다!

이건 아닐 겁니다.

물질적인 가난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뭐 예를 들어서 어느 가난한 집 얘기를 한 번 해볼까요?

밥을 하려고 쌀통을 열어보니까 쌀이 박박 긁어도 네 식구 먹을 밥이 안 됩니다.

연탄도 몇 장밖에 안 남았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책값이다. 용돈이다, 달라고 떼를 씁니다.

결국에 못줍니다.

우는 아이 달래서 학교에 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집도 단칸 월 셋방인데 그것도 제대로 못 내서 여러 달 못 내서 주인한테 늘 눈치를 보고 피해 다닙니다.

막노동하던 남편은 등짐지다 허리가 삐끗해서 여러 달 땡전 한 푼도 못 벌고 있습니다. 오후가 돼서 집주인 아이와 우리아이가 대판 싸우는데 우리아이가 차라리 얻어터지면 괜찮은데 집주인 아이를 아주 쌍코피를 내고 들어옵니다. 집주인이 눈을 부라리면서 당장 방을 빼라고 난리를 칩니다. 아이를 끌어다가 두들겨 패면서~~

“얘 이눔의 새끼야! 니가 차라리 맞고 들어오지 왜 집주인 아이를 패냐고?”

그러면서도 서러워서 나중에 아이를 붙들고 엉엉 울면서 니가 부모 잘못 만난 것이다!

이정도 되면 이게 행복한 겁니까?

예수님이 얘기하시는 행복이 이런 겁니까?



<우는 자가 행복하다!>

그렇다면 아이 끌어안고 엉엉 우는 이 엄마가 행복한 겁니까?

그런 사람에게 천국이 가까이 온 겁니까?



여러분이나 저나 그런 행복이 영적인 행복이 아니라는 거는 미루어 짐작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자!

다시 말 하면 매일같이 포기의 영성을 사는 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

그래서 영성 중에서 가장 어려운 영성은 바로 포기의 영성입니다.



악습 하나를 버렸다 싶으면....악습 두 개가 내 마음 안을 차지합니다.

악습 하나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싶으면 다른 악습이 나를 지배합니다.

미움하나를 몰아냈다 싶으면 다른 미움이 내 삶을 지배하고 나를 슬프게 합니다.

그런 여러 가지 세상유혹, 분노라든지 버려야 될 것들, 미움, 집착.....

내 악습이 나를 공격해 오더래도~~

하느님 중심으로 사는 자는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쉽게 탈출을 합니다.



제가 어느 본당에 근무할 때, 예비자 교리 반에 형제 한분이 교리를 배우셨는데, 그 분은 직업이 엿장수였습니다. 옛날에는 왜 이렇게 그 등에다가 줄을 매가지고 엿판을 갖고 다니면서 가위를 쩔그덕 쩔그덕 거리면서....

근데 소아마비라 다리가 몹시 짧다보니까 그 양반이 걸을 때는 엿판이 막 뒤집어졌다 떨어졌다 합니다. 몸이 그러니까....일 년 내내 군복에다가 염색한 옷 한 벌이 전부인 그 양반 옆에 가면 냄새가 나고,  옷이 쩌들어 가지고~~

예비자 교리반 때 그 양반 곁에 사람들이 안 앉습니다.



아무튼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세례 받고 난 다음에 교무금을 책정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형제가 제 앞에 오더니

“신부님 저는 따로 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내겠습니다.”

아, 그러더니 30일 있는 날은 삼만 원을 가져오고~~





한 이십 여 년 전 얘긴데 그때, 제가 있는 그 본당에서 교무금 제일 많이 내던 양반이 오만원인가 ~~그러던 시절인데 이 엿장수아저씨가 삼만 원, 삼만 천원을 내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분께 “베드로씨!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베드로씨는 한 달에 한 이천 원 정도만 내도 하느님이 기뻐하실 겁니다.”

베드로씨는 저를 쳐다보면서

“신부님이 가르친 것과는 다르네요.”

“제가 언제 교무금 많이 내라고 가르치지는 않았는데요?”

“신부님이 말씀하셨지요?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이 그 집의 주인이 되시고 그 집에 식구가 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예, 제가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셨기 땜에 예수님 밥값을 벌어야 될 거 아닙니까?”

열심히 가위질을 하면서 엿을 팔았더니 하루에 천 원씩이 모아지더래!

그래서 예수님 밥값으로 그걸 고대로 쓰지 않고 모았다가 30일인 날은 3만원을 가져오고 31일인 날은 3만 천원을 냈습니다.



그 성당 오천 명 신자가운데서 매일매일 예수님을 정말 자기 집 식구로 알고 예수님의 밥값을 준비하면서 살아간 분은 그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엿장수아저씨 베드로 한 분이였습니다.



미사 때... 평화의 인사를 할 때도 신자들은 그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미사 끝나고 나면 절뚝절뚝거리면서 혼자서 갔는데 어느 날 그분이

“신부님 제가 어려운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뭡니까?”

“저희 집이 너무 너무 누추한데 그래도 저 신부님 식사한번 해드리고 싶습니다. 오실 수 있겠습니까?”

“아, 물론 가다말다요!”

그때 제가 관할하고 있는 성당은 재개발지대라 반은 이미 아파트가 들어섰고 반은 여전히 산동네, 산으로 기어 올라가는....

아주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그 양반의 집은 함석으로 된 집이였는데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 보니까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살아가는데....

신부가 온다고 하니까 그 전날 도배를 해가지고 풀냄새가 풀풀 나~~

옷 걸 벽도 모자라는 판인데 벽 한쪽에다가는 하얀 도화지를 벽에다가 바르고

그 위에다 예수님 십자가를 걸고~~

성지가지를 꽂은 밑에다 예수성심 상본 성모성심 상본을 액자에다 넣어서 걸어놨고~~

그 밑에는 성모님 상이 있었습니다.

좁은 방이었지만 베드로씨는 기도할 수 있는 지성소를 만들어 놨던 거였습니다.



밥이 나왔는데 식사 전 기도를 하려고 하다 제가 멈칫했습니다.

내 밥 바로 앞자리에 금수저가 놓여있고 그리고 아주 좋은 방석이 있었습니다.

혹시 누구를 또 초대한 줄 알고

“지금 기도해도 되겠습니까?  이 자리는 누구자립니까? 혹시 또 주교님도 초대하셨습니까?”

“주교님이 여길 왜 옵니까?”

“이 자리는 누구 자립니까?”

베드로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예수님 자리지요!.”

그분은 진짜로 세례 받는 그날부터 우리 집에 예수님이 산다고 백 프로 믿고 그날부터 예수님 밥그릇 국그릇 준비하고 예수님의 수저를 준비해서 항상 밥 먹을 때마다 예수님 몫을 떠놨던 거였습니다.



저는 그날 밥을 먹으면서 너무너무 창피해서 밥이 코구녁으로 들어가는지 귓구녁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내가 명색이 사제인데....사제관에 살면서도 이 사제관 안에 예수님이 같이 계신다고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느껴봤던가!’

불행하게도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없는 듯이 사제관에서 살았습니다.



베드로씨는 사제에게 배운  교리를 그대로 믿고

‘예수님이 이제부터 우리 집의 주인이시고 우리 집 식구다!’

예수님의 밥값을 벌기위해서 엿을 팔아서 준비를 했고~~

배운 그대로 십일조 생활을 했으며~~

나중에는 축복을 받습디다!



어떻게 미군부대 어느 쪽으로 어떻게 연결이 되어가지고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을 팔아서 고물상을 하다가 물질의 축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어 가지고 지금은 그 본당에서 사목회 부회장까지 하고 계세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교회정신을 갖고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바로 그런 분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가난한 자가 아니겠는가?



성서에 보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거보다 어렵다!>

거기서 얘기하는 부자는 물질적인 부자가 아닐 겁니다!

왜요?

부자가운데도 베풀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부자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만하게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난한 것을 세상의 탓으로 돌리고, 사람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그런 교만한 가난뱅이들이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부자라고 해서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도 아니요!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얘기하는 가난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

영혼이 가난한 자일 겁니다.



우리 교우분들 가정방문을 다녀보면 많은 분들이 복숭아 농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어느 농부가 있었는데 집이 몹시 가난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신자생활을 했고~~

식구들 여섯을 거느리고 여유가 없었지만~~

아이들 가르치면서 그래도 성당에다 내는 교무금만큼은 절대로 헛되이 내지 않고

정성을 다해서 바쳤습니다.

그분이 교무금을 바칠 수 있었던 그 힘은 뭐냐!

가난했지만 그 집에는 두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앞뜰에 있는 감나무는 감이 그렇게 많이 열리지는 않았는데 그 감나무를 교무금 감나무로 정해놨고 뒤뜰에 있는 감나무는 감이 많이 열리는데 그 감나무에서 나오는 열매를 가지고 아이들 학비를 댔던 겁니다.

어느 해 그 동네에 흉년이 들어서 풀과 나무가 다 말라 죽었는데 이상하게도 교무금 감나무만큼은 다른 때보다도 감이 몇 배로 열려 그 감을 팔아가지고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은혜를 체험한 그 농부는 '왜 내가 진작 뒤에 많이 열리는 그 감나무를  하느님께 바치는 감나무로 정하지 못했을까!'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감곡신자들, 농사를 많이 지시는 분들은 복숭아나무를 수백 주를 아마 하실 겁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 예수님께 바치는 복숭아나무를 가지고 계신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그래, 요 나무에서 나오는 수확만큼은 하느님에게 봉헌해야 되겠다.’

이러시는 분들이 우리 신자가운데 얼마나 계십니까?

이 농부처럼 우리들은 하느님에게도 온전한 정성을 바치지 못합니다.

많이 나오는 감나무는 자식을 위해서 썼고 쪼끔 열리는 감나무는 하느님에게 바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큰 축복을 주시니

진실로 정성을 다한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 내릴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먹여 살리시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옛날 공과에 보면 이런 말로 시작이 됩니다.

<천주사랑 재물사랑 함께 못하는 것!>

우리가 숨쉬고, 밥 먹고, 물마시고, 걸어 다니고, 눕고 일어나고 하는 것이 또 생각하고 보고 듣고 말하는 것....

모두가 다 하느님의 은총인데 너무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몸의 기능이 나빠지거나 마비된 후에야 그것을 깨닫게 됨은

평상시에 하느님의 고마움을 너무나 모르고 지내고 있다는 표시일 겁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권리장전이라고 하는 진복팔단을 얘기하십니다.

그 첫 번째가 ‘가난한 사람들아, 행복하다!’

절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를 놓치지 마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에 대한 사랑을 놓치지 마십시오!



반드시 버려야 될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입에서는 달아서 ‘삼켜라! 삼켜라!’ 해도 꾹 참고 ‘퇴’하고 뱉어버릴 때....

그때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가난한 자의 행복임을 명심하면서~~

오늘 이 미사를 통해서 가난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몸 안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겸손 되게 맞이합시다. 아멘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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