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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09:08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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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죽음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때



인류구원을 위한 예수님 사랑의 행렬이 계속됩니다. 가슴이 탁 트이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시작된 예수님 일행의 행렬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타볼산, 그리고 광활한 에스트렐론 평야를 거쳐 사마리아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렬이 조그마한 마을 나인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성문을 통과하던 중 또 다른 한 행렬과 만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두 무리의 행렬이 나인 고을의 성문에서 딱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행렬의 만남은 참으로 기가 막힌 행렬, 정말 크게 대비가 되는 만남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단을 중심으로 하는 생명의 행렬이었고, 또 다른 행렬은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중심으로 하는 죽음의 행렬이었습니다.



참으로 운 좋은 과부요, 죽은 외아들이었습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습니다. 다른 수많은 상여들이 그냥 그대로 성문을 통과해서 성문 밖 무덤 속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와 죽은 외아들은 기적처럼 성문에서 생명과 죽음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절대자 예수님 앞에 특별한 절차도 요란스런 과정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우선 아들의 죽음과 동시에 이미 죽은 목숨이 마찬가지가 된 과부부터 살리십니다. 아무런 희망이나 삶에 대한 의욕 없이 하염없이 울면서 상여를 따라가던 과부를 위로하십니다. “울지 마라.”



이어서 즉시 예수님께서는 죽은 아들의 관으로 다가서셔서 명령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정말이지 인류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기상천외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집니다. 관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소리, 관속에서 들려오는 두드리는 소리, 외치는 소리, 열린 관에서 되살아난 외아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합니다. 완전히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메시아의 실체를. 예수님은 생명과 죽음까지도 다스리는 삼라만상의 주관자임을. 이제 예수님의 출현으로 인해 죽음이 정복되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죄와 죽음의 시대가 지나가고 부활과 생명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우리 시대, 우리 주변을 둘러봅니다. 예수님 시대나 상활은 유사합니다. 생명의 행렬이 있는가 하면 죽음의 행렬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 한 가지는 죽음으로 향해가는 수많은 행렬들이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의 행렬과 마주치지 못하고 성문 밖 어둠 속으로 던져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명백합니다. 우리가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죽음의 행렬을 향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부활과 영생이 있음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삶과 죽음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일입니다.



방한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있었던 미사에서 하신 강론의 요지가 ‘인간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자’였습니다. 죽음의 문화는 달콤한 얼굴의 다양한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이 그렇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구분된 모순적인 작업환경이 그렇습니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죽음의 문화의 가장 큰 희생양은 이 사회의 약자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며 힘없는 노인들, 청소년들입니다.



죽음의 문화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기생합니다. 생명보다 자본을 우선시하는 배금주의가 죽음의 문화의 출발점입니다. 무지막지한 개발논리가 죽음의 문화를 부추깁니다. 생명윤리의 경시 풍조가 죽음의 문화를 확산시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인간 각자에게 있지 않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망각하다보니 쉽게 극단적인 선택을 서슴지 않습니다.



죽음이 문화일수록 겉으로 보기에 화려해보입니다. 성형왕국, 지나치게 왜곡된 성 인식, 외모지상주의가 넘쳐나는 우리 대중문화의 현실입니다. 바로 죽음의 문화입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의 끝은 참담합니다. 죽음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대항할 때입니다. 무엇이 죽음의 문화인지 어디가 생명의 행렬인지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습니다. 올바른 생명윤리를 확립해야겠습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는 죽음을 부추기는 요인들을 합심해서 억제해나가야겠습니다.



                                                                                                        - 살레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말씀
  • ?
    인화야~(효주아네스) 2014.09.16 09:36
    '죽음의 문화'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그 속에 속해있는 나...
    살아있는 일상안에서 죽은 가치를 향해있지 않은지 반성해 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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