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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1 09:22

연중 제1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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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한없이 부드러운 하느님



열왕기 상권을 통해 전해지는 엘리야 예언자의 하느님 체험은 얼마나 생생하고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산 호렙 한 동굴 속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불도 없던 시절 산중에서, 그것도 깊은 동굴 속에서 얼마나 캄캄하고 무서웠겠습니까? 엘리야 예언자가 잠이나 제대로 잤겠습니까? 꼬박 밤을 지새우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기도하는 일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 중에 주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열왕기 상권 19장 11절)



나약한 인간 세상을 떨치고 강건한 주님의 나라로 건너오라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어둠의 세상에서 광명의 나라로 넘어오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모든 것이 제한된 멸망과 죽음의 세상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주님 나라로 옮겨오라는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주님의 부르심에 엘리야는 하느님을 뵙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갑니다. 그 순간 하느님께서 당신의 현존하심을 엘리야 예언자에게 생생하게 드러내시는데, 그 모습이 바위조차 깨트려버리는 강한 바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지진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리는 불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에게 다가오신 하느님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현현은 절대로 파괴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강한 바람, 두려운 지진, 뜨거운 불 등등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실체를 엘리야 예언자에게 드러내셨는데, 그 모습은 ‘조용하고 부드럽고 감미롭기 그지없는 음성’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하느님께서 공포와 진노, 파괴와 살상의 하느님이 아니라 한없이 부드러운 모습이라는 것이 말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신지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분신입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메시아로서의 모습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분께서는 절대로 악에 악으로 맞서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위협하고 살해하기 위해 갖은 권모술수를 다 쓰던 적대자들에게 폭력으로 맞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눈물로 용서로 기도로 화해로 맞서셨습니다. 결국 조용하고 감미로운 소리로 맞서신 것입니다.



갈릴래아 호수 위에서 풍랑을 만나 공포에 떠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음성 역시 너무나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소리였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오 복음 14장 27절)



하느님께서 깊은 동굴 속에서 두려움에 잠겨있을 때 두려움의 동굴 속, 불신과 의혹의 동굴 속에서 생각만 해도 마음 든든한 주님 앞으로 나와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스승 예수님께서는 역풍의 두려움에서 떨고 있는 제자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동굴 밖으로 나와 산위에 서라고 외치십니다. 삶과 죽음의 지배자이신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과 의혹, 반신반의의 동굴에서 깨달음과 깊은 신뢰의 산 위로 올라오라고 초대하십니다.



군부대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사고를 바라보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한 인간이 또 다른 한 인간을 그리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단 말입니까? 동물들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리도 집요하게 어떻게 그리도 똘똘 뭉쳐 한 약자를 철저하게 깔아뭉갤 수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기성세대 탓입니다. 영화 하나를 만들어도 초대박 흥행을 터트리기 위해 점점 더 폭력성을 가미합니다. 영화 한편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지 모릅니다. 청소년들이 즐겨 애용하는 게임 중에 주인공이 어깨에 다양한 최신식 무기를 장착하고는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만나는 모든 존재를 싸그리 살상하는 게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런 죽음의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 청소년들이 고스란히 군 입대를 합니다. 모든 것이 제한된 병영생활 안에서 심심풀이삼아 그런 게임을 동료들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한없이 부드러운 하느님, 그 어떤 살상이나 폭력, 죽음의 문화를 거부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이 부끄러운 죽음의 문화 앞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반대의 깃발을 올려야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만이라도 폭력성이 지나친 영화 안보기 운동, 잔혹한 격투기 금지 운동, 폭력 게임 개발 반대운동에 적극 나서야겠습니다.




                                                                                                        - 살레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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