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복음 마태 16,13-23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어제는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들의 시국미사가 있었습니다. 가톨릭의 사회교리에 기초할 때, 인간의 존엄과 인권 존중, 공동선을 위해 더 이상 그냥 침묵할 수만 없어 인천교구 160명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30여명의 사제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했지요. 그런데 어제 미사를 봉헌하는데 너무나 더운 것입니다. 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간은 너무나 비좁았고, 천장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있었지만 이 모든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가져다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지요.
덥고 끈적끈적하고...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미사 때 나 혼자 덥다고 종이를 꺼내 부채질을 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꾹 참고 있는데, ‘왜 이렇게 미사는 긴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생깁니다. 바로 그 순간, 얼마 전에 있었던 아는 분들과의 술자리가 기억났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의 만남이었고,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술자리를 가졌지요. 그때도 너무나 더운 날씨였지만, 몇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미사가 길다고 속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시간,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시간에 대해서는 인색하면서도 세상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시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관대했던 것이 아닐까요? 어떤 분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까? 기도를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화는 일상생활 안에서도 나눌 수 있는 것으로, 기도 역시 꼭 성당에 가야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의 뜻이 아닌 세상의 뜻을 따르는, 세상의 즐거움을 쫓을 때 주님으로부터 혼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처럼 말이지요.
베드로는 주님을 향해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지요.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고자 하는 고백입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교회의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칭찬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세상의 기준에 따라 말하자, ‘사탄’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당신에게서 물러가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은 곧 흔들리지 않는 넓고 평평한 큰 돌을 의미하는 반석과 같은 삶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고, 세상의 즐거움만을 쫓는 삶은 길을 걸을 때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 되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걸어가면서 주님의 칭찬을 받으시겠습니까?
밖으로부터 찾아오는 행복은 바짝 마른 벼처럼 가볍다(유리우스 함마).
굳은 믿음을 갖기 위해...
아마 본당에서는 요즘 여름 캠프 시즌이 아닌가 싶네요. 캠프가 끝난 본당도 있을 테고, 아니면 지금 캠프 중인 본당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캠프를 할 때 마지막 날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지요. 바로 캠프파이어입니다. 아마 한두 번쯤은 체험하신 적이 있으실 것 같아서 이 캠프파이어를 떠올리면서 드는 생각을 나눠봅니다.
캠프파이어 불이 활활 타오를 때에는 어떤 나무를 집어넣어도 잘 탑니다. 심지어 젖은 나무라 할지라도 불이 좋으면 금방 타게 되지요. 그런데 두꺼운 장작 하나를 성냥이나 라이터 불을 통해서 태우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불을 붙이고 있으면 몰라도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지요. 혼자서 골방에 앉아 기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분이 바로 앞서 두꺼운 장작을 성냥이나 라이터 불로 태우려고 애쓰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신앙생활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활활 타오르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루면서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은 어떤가요? 특히 이 교회가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곳이라면, 본인이 어떤 상태이냐에 상관없이 그 힘으로 똑같이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혼자만의 신앙생활로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이를 기억하면서 지금부터라도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분명히 이 교회 안에서 주님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굳은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 빠다킹 신부님 강론 말씀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어제는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들의 시국미사가 있었습니다. 가톨릭의 사회교리에 기초할 때, 인간의 존엄과 인권 존중, 공동선을 위해 더 이상 그냥 침묵할 수만 없어 인천교구 160명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30여명의 사제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했지요. 그런데 어제 미사를 봉헌하는데 너무나 더운 것입니다. 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간은 너무나 비좁았고, 천장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있었지만 이 모든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가져다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지요.
덥고 끈적끈적하고...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미사 때 나 혼자 덥다고 종이를 꺼내 부채질을 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꾹 참고 있는데, ‘왜 이렇게 미사는 긴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생깁니다. 바로 그 순간, 얼마 전에 있었던 아는 분들과의 술자리가 기억났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의 만남이었고,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술자리를 가졌지요. 그때도 너무나 더운 날씨였지만, 몇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미사가 길다고 속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시간,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시간에 대해서는 인색하면서도 세상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시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관대했던 것이 아닐까요? 어떤 분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까? 기도를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화는 일상생활 안에서도 나눌 수 있는 것으로, 기도 역시 꼭 성당에 가야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의 뜻이 아닌 세상의 뜻을 따르는, 세상의 즐거움을 쫓을 때 주님으로부터 혼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처럼 말이지요.
베드로는 주님을 향해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지요.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고자 하는 고백입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교회의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칭찬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세상의 기준에 따라 말하자, ‘사탄’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당신에게서 물러가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은 곧 흔들리지 않는 넓고 평평한 큰 돌을 의미하는 반석과 같은 삶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고, 세상의 즐거움만을 쫓는 삶은 길을 걸을 때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 되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걸어가면서 주님의 칭찬을 받으시겠습니까?
밖으로부터 찾아오는 행복은 바짝 마른 벼처럼 가볍다(유리우스 함마).
굳은 믿음을 갖기 위해...
아마 본당에서는 요즘 여름 캠프 시즌이 아닌가 싶네요. 캠프가 끝난 본당도 있을 테고, 아니면 지금 캠프 중인 본당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캠프를 할 때 마지막 날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지요. 바로 캠프파이어입니다. 아마 한두 번쯤은 체험하신 적이 있으실 것 같아서 이 캠프파이어를 떠올리면서 드는 생각을 나눠봅니다.
캠프파이어 불이 활활 타오를 때에는 어떤 나무를 집어넣어도 잘 탑니다. 심지어 젖은 나무라 할지라도 불이 좋으면 금방 타게 되지요. 그런데 두꺼운 장작 하나를 성냥이나 라이터 불을 통해서 태우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불을 붙이고 있으면 몰라도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지요. 혼자서 골방에 앉아 기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분이 바로 앞서 두꺼운 장작을 성냥이나 라이터 불로 태우려고 애쓰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신앙생활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활활 타오르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루면서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은 어떤가요? 특히 이 교회가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곳이라면, 본인이 어떤 상태이냐에 상관없이 그 힘으로 똑같이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혼자만의 신앙생활로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이를 기억하면서 지금부터라도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분명히 이 교회 안에서 주님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굳은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 빠다킹 신부님 강론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