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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아침에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마에 재를 얹어 주는 사제의  목소리도

잿빛으로 가라앉은 재의 수요일 아침

꽃 한 송이 없는 제단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삶은 하나의 시장기임이 문득 새롭습니다

 

죽어 가는 이들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자기의 죽음은 너무 멀리 있다고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나도 숨어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발견에 차츰 무디어 가는

내 마음을 위해서도

오늘은 맑게 울어야겠습니다

 

먼지 낀 마음의 유리창을

오랫만에 닦아 내며 하늘을 바라보는 겸허한 아침

하믈을 자주 바라봄으로써

땅도 사람도 가까워질 수 있음을

새롭게 배웁니다

 

사랑 없으면 더욱 짐이 되는 일상의 무게와

나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

이 또한 기도의 시작임을 깨닫는

재의 수요일 아침입니다

 

                                             -이해인 수녀님

 
 
 
 
 
 
 
천년도 당신 눈에는
 
 
 

  • ?
    관리자 2010.04.06 00:03
    하루하루 일상이 재의 수요일 아침처럼 깨어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수녀님의 맑고 예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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