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목요일

by 인화야~(효주아네스) posted Jul 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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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고생 많은 우리를 향해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그리 길지도 않은 이 한 세상 살아가시느라 ‘쌩고생’하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더구나 요즘 세상은 과거와는 달리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자수성가’ ‘인생역전’을 꿈꾸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한창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 설레고 행복해야할 이 땅의 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겪는 고생이 큽니다. 채 피어나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는 꽃송이 같은 그들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온 몸과 마음이 부서져라 한 평생 수출신화와 산업화의 역군으로 살아오신 어르신들도 사정이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가정과 국가를 위한 한 평생에 걸친 노고와 헌신에 대한 대가로 이제는 안정되고 편안한 노후를 만끽해야 마땅한데 다양한 측면에서의 압박이 여전히 노후생활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 땅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또 어떤가요? 그들의 겪고 있는 고초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극단적 경쟁체제 속에 벌써부터 하루하루가 힘겹습니다. 이런 저런 부담과 압박들을 가방 속에 가득 채워놓고 휘청휘청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벌써부터 안쓰럽습니다.



고생 많이 하기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특별한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생들을 가만히 분석해보니 하지 않아도 될 고생들, 결국 ‘사서 고생’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게 그 지옥 같은 ‘쌩고생’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죽을 고생들입니다. 어디 가서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찾기 힘듭니다.



고맙게도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참으로 따뜻한 위로의 한 말씀을 건네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오 복음 11장 28절)



그래서 이 시대 우리 한국 교회에 주어지는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어야겠습니다.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말 못할 고초에 마음 깊이 공감하며 맞장구쳐줘야겠습니다. 그들이 소리 없이 흘리고 있는 서러운 눈물을 조용히 닦아줘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문턱을 완전히 낮춰야겠습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다양한 모습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은 세상을 향해 활짝 두 팔 벌리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모든 인간이 다 존귀했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생명 붙어있는 모든 인간이 다 하느님의 모상이자 거룩한 창조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앞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활짝 열린 예수님의 모습 앞에 오늘의 우리 교회 공동체는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도 개방적이셨습니다. 이 세상 단 한사람도 당신 사목의 대상,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어른이든 코흘리개 어린이들, 잘 나가는 사람이든 인생이 꼬인 사람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 기꺼이 맞이하는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 혹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지긋지긋한 병고에 하루하루가 괴로운 사람들, 큰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지만 마땅히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데도 없는 사람들이 기쁘게 우리 교회를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그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고통스런 목소리를 경청하기를 바랍니다.



춥고 배고픈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가라’ ‘식사라도 하고 가라’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포근하게 그들을 감싸 안고 격려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물이자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변장하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또 다른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살레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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