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수요일

by 인화야~(효주아네스) posted Jul 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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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찬미예수님

오늘 복음 읽으신 것 기억나세요?

예수님이 군중을 남겨두고 도망치듯이 배를 타고 떠나셨어요.

예수님 성격에 도와달라는 사람을 두고 가실 분이 아닌데~

군중을 남겨두고 배를 타고 피하는 수밖에 없을 만큼 어지간히 피곤하셨나 봅니다.

그만큼 진이 다 빠지신 것입니다.



질문 하나 던져볼게요.

풀을 한 시간 뽑는 게 힘들까요?

다섯 사람 만나 대화하는 게 힘들까요?

맞아요~ 단순노동은 오히려 기를 얻어요.

저도 성지 잔디 깎기 담당입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피정하면 치유기도가 나가기 때문에 기가 다 빠져나가요.

피정하는 곳에는 마음이 병든 사람, 육신이 병든 사람, 부마자...... 등

오만사람이 다 오기 때문에 오히려 어두운 기들이 사제에게 들어와요.

강의를 하는 동안에는 무당이 작두 타듯이 신들린 듯해요.

그러나 피정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를 타면 시체처럼 늘어져요.



저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피곤하셨을지 이해가 갑니다.

예수님은 배에 오르시자마자 피곤에 지쳐 뱃고물에 기대어 잠이 드셨어요.

여기 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잠시 후, 거센 돌풍이 몰아치고 배안에 물이 들어차 배가 침몰할 상황에도

주무시고 계셨다~ ?

아마 이때는 눈만 감은 채,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지 않으셨을까?

아니나 다를까, 제자들은 호들갑을 떱니다.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 도대체 스승님 뭐하시는 겁니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에게 엄명을 내리십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해져라!’

그리고 하신 말씀은

“왜 그렇게도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아직도~’ 라는 단어 속에는 예수님이 열두제자들에게 얼마나 믿음이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계시는지 드러납니다.



바람이 잔잔해지고 호수가 차분해지니까 제자들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아, 주님이 우리와 함께 배 안에 계셨지?’

‘죽은 이도 살리고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옆에 계셨는데 우리가 왜 허둥대었을까!’



여러분 집에 십자가 걸렸다고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주님의 현존을 느끼느냐가 믿음입니다.

제자들의 평화도 주님이 계시다는 내적평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순례자들에게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여러분 가슴속에 사람을 담지 말고 하느님 담고 사셔야 합니다~ 입니다.

이 세상에 온전히 믿을 사람은 없습니다.

믿음이란 하느님이 내안에 계신다는 내적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풍랑이나 바다보다 거친 환경 속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살아온 것을 소설로 써도 몇 권은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풍랑으로 집까지 날리고 갈팡질팡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90년대 초에 중국 선교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등소평이 달러를 벌어드리려고 문호개방을 해서 평신도회장이랑 네다섯 명이

팀을 꾸려 중국선교룰 다녔습니다.

교우들에게 줄 선물로 십자가, 성경책, 묵주 등을 사가지고 심양공항을 들어가는데

공안원들이 랜덤으로 체크를 했어요.

개중에 좋은 트렁크 가진 사람은 안 잡았어요.

사과박스는 다 검사를 했는데 딱 걸렸어요.

“너 얘기 관광하러 온 게 아니라 아편 전하러 왔지?”

종교를 아편이라고 했습니다.

돌아갈 때 가지고 간다고 보관증 하나만 받아가지고 나와서

교우들한테 묵주하나 선물하지 못하고 피정만 시키고 돌아왔습니다.



다음에 갈 때, 사람은 특별히 체크 안한다는 걸 알고

묵주를 줄로 이어서 발목부터 몸에 감았어요.

소 십자가 네 개와 큰 십자가는 등에 붙이고 옷을 입고 로봇처럼 걸었습니다.

그때 무슨 배짱으로 그 일을 했는지 몰라요.

하느님중심, 성령중심의 삶을 살며 내안에 성모님이 계셨으니 지켜주실 것이다~

라는 믿음으로 두렵지 않고 담대했습니다.



모택동 혁명이 일으키고 나서 50년 만에 한국 신부가 가서 피정지도를 했습니다.

제일먼저 소팔가자에 가서 사흘 동안 피정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조선족 자체가 서울말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조선족들은 남편을 ‘나그네’ 라고 합니다.

내가 열 개를 이야기 하면 7개 정도가 전달됩니다.



한족들에게는 회장을 통해 7개정도 중국말로 통역이 되어 전달합니다.

내가 한 말의 반 밖에 전달이 되지 않지만

사람의 언어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성령이 채워주십니다.

웃어야 할 때 웃고, 울어야 할 때 손수건을 꺼내 웁니다.

그것은 성령이 함께 하셔서입니다.



사제들의 강론도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사제들이 설교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시대를 떠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기적을 본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과 한 배를 타고서도

살려달라고 우왕좌왕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그리스도와 동일화의 신비 속에 살면서도 바람 같지 않은 바람에도

병든 잎처럼 다 떨어져서, 분노하고 원망하며 남의 탓만 하고 살지는 않는지~



많은 신자들이 걱정을 기도라고 착각을 합니다.

걱정은 기도가 아닙니다.

걱정을 하면 마귀가 들끓지만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은 순탄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환난에 있을 때 나타납니다.

그 사제의 거룩함은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십자가를 졌을 때 드러납니다.

기도 하십시오.

걱정은 기도가 아닙니다.



제 카페에다가 이번 메르스와 가뭄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걱정만 할 게 아니라 고리기도를 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토요일부터 아홉시, 오후세시, 저녁 6시에 함께 합니다.

오후 아홉시에는 메르스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해서

오후 세 시에는 의료진과 봉사자들을 위하여

저녁 6시에는 메르스가 빨리 진정되어 이 나라에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면서

고리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는 세 시’, ‘나는 여섯시’ 이렇게 글을 달고 계십니다.



많은 경우 어려운 상황이 오면 걱정만 하다가 세월 다 보냅니다.

걱정은 마귀를 불러들이고 평화 깨트립니다.

정말로 눈물 나게 참다운 기도를 한다면 기적을 일으킬 것입니다.

어디선가 촛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이것이 고리기도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도 고리기도에 동참해 주십시오.

그 시간에 묵주기도 바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말을 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것은 꾸짖는 말이 아니라 힘을 내라고, 용기를 내라고

이것이 끝이 아니다~ 는 말씀이십니다.

거룩한 주일날, 거룩한 성지에 보내주심에 감사합시다. 아멘


                                                                                          
                                                                                              - 배티성지 김웅열 토마스아퀴나스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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