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by 인화야~(효주아네스) posted Sep 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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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복음 루카 7,11-17



그때에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수십 년 전, 미국의 미시간 호를 유람하던 배가 뒤집혀서 수많은 사람들이 조난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 배 안에 수영 선수가 있었지요. 그는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자그마치 23명이나 살려냈고, 그 후 매스컴에 이 수영 선수의 이름이 떠들썩하게 오르내렸지요.

이제 노신사가 된 수영 선수에게 기자가 찾아와 예전의 일을 말하면서 “그 사건 이후 기억에 가장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씁쓸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구했던 23명 가운데 아무도 저를 찾아와서 고맙다는 말을 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감사를 표시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그러나 자신이 받은 그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당연히 감사를 표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잘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하기보다는 당연히 내가 누려야 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제 어디를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퇴근시간이라 길이 너무나 많이 막히는 것입니다. 저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지시하는 데로 운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가뜩이나 길이 막히는데 더 복잡한 길로 들어선 것이지요.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또 막히는 길에 대해서 화를 내면서 가고 있는데, 교통방송에서 제가 원래 가려고 했던 길에 고장차가 있어서 교통체증이 대단하니 다른 길로 우회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떠한 순간도 다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지요.

감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도 매번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단 한 번도 소홀히 하시지 않습니다. 늘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따뜻한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그 감사의 마음을 잊고 있는 우리들의 짧은 기억력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가지고 계신지 오늘 복음에서도 잘 나오지요. 주님께서는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죽은 외아들의 상여를 따르고 있는 과부를 보시지요. 과부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죽은 아들을 살려주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는 하느님을 찬양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던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실 때, 변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을까요? 짧은 기억력 때문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서 십자가형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사랑을 너무나 자주 잊습니다. 바로 감사하며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일을 찾아보십시오. 그만큼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화살표만 따라가는 길이 아니다. 자기만의 방향 감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곧 내 안의 나침반이다(정진홍).


                                                                        
                                                                        그밖에 조금 더

한 학생이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성공한 사업가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학생은 사업가에게 성공의 비밀이 과연 뭐냐고 물었지요. 사업가는 한 동안 그 질문을 곰곰이 생각한 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밖에 조금 더.”

“나는 어린 시절에 보통 사람과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의 차이가 그 한마디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최고인 사람들은 자기 몫을 다하고 ‘그 밖에 조금 더’했다는 사실을.”

지치고 힘들었을 때,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 ‘그 밖에 조금 더’하면 어떨까요? 또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때 ‘그 밖에 조금 더’ 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누군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뒤에도 ‘그 밖에 조금 더’ 하면 어떨까요?

‘그 밖에 조금 더’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입니다.



                                                                                                                                 - 빠다킹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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