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by 인화야~(효주아네스) posted Jun 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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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복음 마르 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며칠 전에 운전을 하다가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데, 옆 차선에서 승용차를 운전하시던 분이 차에서 내려 자기 앞의 택시 운전기사에게 욕을 퍼붓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물론 택시 운전을 하시던 분이 어떤 운전 실수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욕을 저렇게 심하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인상을 찡그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결국 택시 기사도 차에서 내려 다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둘의 싸움이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지요.

잘잘못이 어디에 먼저 있었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다른 이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지요. 사실 어떤 행동이든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세워 그 행동만 바라본다면 당연히 싸움이 날 수밖에 없지요. 어제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글입니다.

한 의사가 응급수술을 위한 긴급전화를 받고 병원에 급히 들어와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의 아버지가 의사를 보자마자, “오는데 하루 종일 걸리나요? 내 아들의 생명이 얼마나 위급한지 모르나요? 의사로서 어떤 책임 의식도 없나요?”라고 쏘아 붙입니다. 의사는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왔지만 외부에 있어서 늦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니 조금만 진정해주세요.”라고 말했지요. 이 말에 환자의 아버지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하라고? 만약 당신의 아들이 지금 여기 있다면 진정할 수 있겠어? 내 아들이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몇 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밝은 표정으로 나온 의사는 성공적이라고만 말하고는 급히 나가는 것입니다. 환자 아버지는 “저 의사는 왜 저렇게 거만한가요? 내 아들의 상태를 묻기 위해 몇 분도 기다릴 수 없나요?”라고 서운한 감정을 이야기했지요. 바로 그때 간호사가 이런 말을 전해줍니다.

“의사 선생님의 아들이 어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례 중 수술전화를 받고 급히 들어온 겁니다. 아드님 목숨을 살리고 장례를 마무리하러 급히 가신 거예요.”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나의 입장만 받아들이는 것을 소통으로 생각하지요. 나의 입장이 통하지 않으면 무조건 불통으로 생각하면서 그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거부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소작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옳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파견한 종들을 죽이고, 심지어 사랑하는 외아들까지 죽여 버립니다. 포도원 주인이 보여 준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 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입장만을 내세워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으며 결국 죄에 물들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 주님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죄에서 벗어나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의 삶은 누군가에겐 풍경이 된다(이희인).



                                                                                                                                - 빠다킹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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