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성지

by 들길따라 posted Aug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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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위치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471 배티(梨峙)는 신유박해(1801년)로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이어지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골짜기로, 1830년을 전후로 교우촌(비밀신앙공동체)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866년 즈음에는 교우촌이 15곳에 이르렀던 곳이다. 또 조선교구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마을이고,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사목 중심지로 교리서인 <천주가사>가 탄생되었던 곳이었다. 또 배티와 그 주변으로는 27여 기에 이르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출처 : 두산 백과) 1976년 9월 성지 개발 1996년 6월 완공된 성당(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과 성당에서 야외제대까지 연결된 청동으로 만든 십자가의 길, 야외제대 및 성모상,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와 최양업 신부의 성당 및 사제관으로 사용되던 초가집을 재현한 건물, 양업영성관 및 수련관, 무명순교자 6인 묘역 및 14인 묘역, 최양업 신부 동상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2012년 4월 15일 :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전 봉헌 2014년 4월 11일 : 최양업 토마스 신부 박물관 개관 [최양업 신부 박물관] 건물 외관은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등이 마카오에서 신학교 유학생 시절 기거했던 기숙사와 성당 원형을 그대로 옮겨왔다. 내부에는 최양업 신부와 관련된 유물 전시뿐 아니라 최 신부가 걸어간 길을 시청각과 촉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최첨단 IT 기술을 동원해 체험하는 전시실로 꾸며졌으며, 조선시대 말 순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영상물, 최 신부가 프랑스 신부에게 쓴 라틴어 서한문, 조선시대 말 천주가사 한글본 등의 유물을 볼 수 있고, 당시 생활상을 느낄 수 있도록 재현한 공간과 최 신부가 흘린 땀을 형상화한 구조물에 앉아 기도할 수 있는 공간 등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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